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샬럿 어거스타 (문단 편집) === 결혼과 죽음 === || [[파일:Charlotte_and_Leopold_wedding.jpg|width=100%]] || || [[파일:1280px-Princess_Charlotte_Augusta_of_Wales_and_Leopold_I_after_George_Dawe.jpg|width=100%]] || || 샬럿 공주와 [[레오폴드 1세|레오폴드]]의 결혼식 || [[1816년]] [[5월 2일]], 샬럿과 레오폴드의 성대한 결혼식이 칼튼 하우스에서 거행되었다. 수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을 보려고 [[런던]]에 몰려들었다. 두 사람은 결혼 후 정말 행복했다. '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'고 말 할 정도로 사랑이 넘쳐흘렀던 두 사람에게는 그렇게 행복한 날들만 있을 것 같았다. 하지만 [[1816년]] [[8월]] [[오페라]]를 보던 샬럿은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고 곧 첫 아이를 [[유산(의학)|유산]]했다. 다행히도 [[1817년]] [[4월]]에 그녀는 다시 임신 소식을 발표했고, 그것은 [[영국]] 국민들의 가장 큰 관심거리가 되었다. 사람들은 새로 태어날 로열 베이비가 아들일지 딸일지 내기를 하곤 했다. 임신 말기에 담당 주치의는 아이가 너무 커지는 것을 우려하여 샬럿에게 체중 조절을 하도록 했는데, 이는 샬럿을 약하게 만드는 데 일조하였고 결국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. 예정일이 2주가 지난 [[11월 3일]] 저녁, 샬럿의 산통이 시작되었다. 주치의는 여전히 그녀에게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고, 진통은 이틀이 지나도록 진행되었지만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. [[11월 5일]], 샬럿은 아주 큰 남자아이를 사산했다. 죽어서 태어난 아이를 본 사람들은 영국 왕실 가족들을 닮은 아주 잘생긴 남자아이였다고 말했다. 샬럿은 출산 후 회복 중이었고 [[레오폴드 1세|레오폴드]]는 긴장이 풀린 탓에 아편을 먹고 잠에 들었다. 그러나 그날 밤, 샬럿은 구토를 하며 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했다. 그녀는 호흡이 불규칙했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. 주치의와 [[레오폴드 1세|레오폴드]]를 데려왔을 때 그녀는 이미 사망해 있었다. 사산의 후유증으로 숨진 듯하나 사인이 영국 왕족들이 앓던 유전병인 [[포피리아]]라는 얘기가 있다. 그렇게 샬럿은 결혼한 지 1년 6개월 만에 향년 21세를 일기로 요절했다. || [[파일:The_Funeral_Ceremony_of_Her_Royal_Highness_the_Princess_Charlotte_of_Wales_and_Saxe_Coburg_by_James_Stephanoff.jpg|width=100%]] || || 샬럿 공주의 장례식 || 샬럿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온 나라는 슬픔에 잠겼다. 모든 사람들은 검정색 옷을 입었고 상점은 2주간 문을 닫았다. [[조지 4세|조지 왕세자]]는 너무 슬픈 나머지 몸을 가눌 수조차 없어서 외동딸의 장례식에 불참하였다. 임종을 지킬 수조차 없었던 캐롤라인은 뒤늦게 딸의 사망 소식을 듣고 혼절했고, 심지어 옛 약혼자였던 [[빌럼 2세|빌럼 왕세자]]마저도 애도를 표했다. 하루 아침에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은 [[레오폴드 1세|레오폴드]]는 평생 샬럿을 그리워했다. 샬럿과 사별하고도 십여 년이 지나도록 재혼하지 않다가 벨기에 국왕으로 추대된 후에야 샬럿을 닮은 여성인 [[루이즈 도를레앙|오를레앙의 루이즈 마리]]와 재혼했고, 루이즈와의 사이에서 낳은 [[벨기에의 샤를로트|자신의 고명딸]]의 이름도 샬럿의 프랑스식 인명인 샤를로트로 지었다. 심지어 레오폴드 1세는 임종 직전에도 '샬럿!'을 외쳤고 이것이 유언이 됐다고 한다. 이후 샬럿은 [[세인트 조지 예배당]]에 아들과 함께 묻혔다. 샬럿의 사망 당시 [[조지 3세]]의 적손자녀는 '''아무도 없었고'''[* 3남 [[윌리엄 4세|클래런스 공작 윌리엄 왕자]]와 6남 서식스 공작 어거스터스 프레더릭 왕자에게 자녀가 있긴 했지만 모두 서자들이었다.], [[조지 4세|조지 왕세자]]는 아내 [[브라운슈바이크의 카롤리네]]와 관계가 파탄나서 더이상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었다. 결국 조지 3세의 아들들은 급히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 결과 4남 [[에드워드 어거스터스|켄트 공작 에드워드 왕자]]와 [[마리 루이제 빅토리아|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녀]][* [[레오폴드 1세]]의 누나이다. 즉, 샬럿의 시누이.] 사이에서 태어난 [[빅토리아 여왕]]이 왕위를 잇게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